SNS 속 제로웨이스트는 왜 그렇게 완벽해 보일까요?
최근 몇 년간 SNS에서는 '제로웨이스트'가 하나의 트렌드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블로그를 보면 세련된 제로웨이스트 라이프가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유리병에 정갈하게 담긴 곡물, 대나무 칫솔과 고체비누, 장바구니에 담긴 신선한 채소. 배달 음식 없이 집에서 직접 요리해 먹고, 일회용품 하나 없는 주방과 욕실은 너무도 정돈되고 완벽해 보입니다. 그런 게시물을 보다 보면 “나도 저렇게 살 수 있겠지”, “이제 나도 환경을 위해 변화해보자”는 의지가 생깁니다. 저 역시 그런 마음으로 제로웨이스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천을 시작하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SNS 속의 장면은 그저 ‘결과물’일 뿐, 그 과정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정갈하게 포장된 비누, 용기 가득 담긴 리필 세제, 비닐 없는 장바구니는 보기엔 근사하지만,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시간, 노력, 정보 탐색, 심지어 돈까지 고려하면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SNS는 미화된 순간을 포착한 이미지입니다. 그 안에는 수차례의 실패, 시행착오, 그리고 현실적 타협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그런 뒷이야기는 잘 공유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결국 우리는 ‘완성된 결과’를 보고 자기 자신과 비교하게 되고, 쉽게 위축되거나 실망하게 됩니다.
현실 속 제로웨이스트 실천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불편합니다
SNS에 나오는 장면만 보고 저는 제로웨이스트가 그저 '물건 몇 개 바꾸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액상 샴푸 대신 샴푸바를 쓰고, 텀블러 하나 들고 다니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샴푸바 하나를 고르기 위해 성분을 비교하고, 두피 타입에 맞는지 검색하고, 사용 후기까지 살펴봐야 했습니다. 쓰고 나서도 머릿결이 푸석해지거나 두피 트러블이 생겨서 결국 다시 일반 샴푸로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텀블러는 사놓고도 자꾸 잊어서 몇 번 쓰지 못했고, 집에서는 고체비누가 물러져 곰팡이가 생긴 적도 있었습니다.
리필숍을 방문해보고 싶었지만, 제 동네에는 그런 곳이 없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리필숍이 지하철로 40분 거리였고, 무거운 유리병을 들고 오가야 했습니다. 평일에는 도저히 갈 수 없고, 주말에도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다시 대형마트에서 세제를 사게 되었고, 용기에 담는 경험은 잠시의 이벤트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가격도 무시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천연 원료로 만든 고체비누나 친환경 칫솔은 일반 제품보다 2~3배 비쌌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입장에서 한 번에 바꾸기에는 부담이 컸고, 지속적인 유지도 어려웠습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사회적 인프라’였습니다.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고 싶어도, 내가 생활하는 환경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트는 여전히 포장 중심이고, 배달 음식은 일회용품 기본 제공입니다. 커피를 텀블러에 담아 달라고 하면 곧잘 당황하는 점원도 있고, 텀블러 뚜껑은 어차피 플라스틱이니 무슨 의미냐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스스로가 ‘과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점점 행동에 망설임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SNS에서 보지 못했던 현실의 벽이었습니다.
완벽을 기준으로 하면 누구든 포기하게 됩니다
실천이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습니다. 제로웨이스트라는 말 자체가 ‘쓰레기를 제로(0)로 만든다’는 목표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조그만 일회용품 하나를 쓰게 되어도 실패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종이컵을 사용하거나, 포장된 채소를 샀을 때, 플라스틱 뚜껑이 붙은 음료를 마셨을 때 저는 자책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걸 지키지 못하고 있어”, “진짜 실천자는 이렇게 안 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며 점점 실천 자체가 무겁고 피곤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자신을 몰아세울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시간이 지나면서 제로웨이스트는 완벽을 위한 실천이 아니라, 줄일 수 있는 만큼 줄이는 노력의 누적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플라스틱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 삶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다만 한 번 덜 사용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면, 그게 곧 실천입니다. 샴푸바가 안 맞는다면 리필용 샴푸를 써도 됩니다. 텀블러를 못 들고 나갔다면 종이컵 뚜껑이라도 빼고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작은 실천 하나하나가 모이면 어느새 삶의 기준이 바뀌고, 환경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게 됩니다.
SNS에서 보이는 실천자들은 대부분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의 방식과 기준을 만들어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실패를 거듭하며 지금의 루틴을 만들었을 것이고, 그 과정은 이미지에 담기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지, 그 선택이 누군가의 기준에 얼마나 맞느냐가 아닙니다. 제로웨이스트의 진짜 의미는 **'나의 삶 안에서 실현 가능한 만큼 실천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며, 내가 오랫동안 이 가치를 놓치지 않게 만들어줍니다.
나만의 리듬대로 실천하는 것이 진짜 지속 가능한 방식입니다
SNS는 분명 제로웨이스트 실천에 대한 영감을 줄 수 있는 좋은 도구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이미지와 현실은 다르며, 우리는 그것을 그대로 따라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건 나의 일상에 맞는 실천 속도를 찾는 것입니다. 하루 한 가지,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내가 줄일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작은 변화에 만족할 수 있다면 그 실천은 오래갑니다. 완벽한 실천보다 꾸준한 실천이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가집니다.
저는 이제 실패를 실패로 여기지 않습니다. 배달을 시켜도, 편의점 음료를 사도, 플라스틱 뚜껑을 사용해도, 다음엔 좀 더 나은 선택을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로웨이스트는 '완벽'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일상에 녹아들 수 있습니다. SNS는 참고자료일 뿐이고, 진짜 실천은 나의 리듬과 조건 안에서 만들어져야 합니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실천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 방식대로, 내 공간 안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이 바로 가장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제로웨이스트입니다.
환경을 위한 실천은 거창할 필요 없습니다. 텀블러 하나, 비닐봉지 하나 덜 받는 선택도 의미 있습니다. 그런 작지만 구체적인 행동들이 모여 사회를 조금씩 변화시키고, 나 자신도 성장시킵니다. 중요한 건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고,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인정하고, 그걸 지속하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진짜 제로웨이스트의 정신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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